야구(baseball)

미국 야구 발전사

해맑은오리 2025. 11. 27. 03:04

미국 국기

 

미국 야구의 역사는 단순한 스포츠의 진화를 넘어, 산업화·이민·전쟁·대중문화와 맞물려 성장해온 굵직한 사회사이기도 하다. 현대의 MLB가 탄생하는 과정에는 수많은 규칙의 변화, 리그 구조의 재편, 그리고 시대별 선수들의 스타일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 19세기 초기: 아마추어 경기와 규칙의 표준화

미국 동북부 아마추어 클럽들이 야구의 기초 구조를 만들던 시기

19세기 초반 미국에서는 라운더스·타운볼 계열의 구기 종목이 혼재해 있었다. 뉴욕 지역의 클럽들은 통일된 경기 규칙이 필요하다고 보았고, 1845년 알렉산더 카트라이트가 포함된 뉴욕 니커보커 클럽이 《니커보커 규칙》을 제정했다. 이 규칙은 삼진 제도, 수비의 태그아웃, 베이스 간 거리(90피트), 9인 구성 등 현대 야구의 근간으로 이어진다.

당시 경기는 철저히 아마추어 중심이었으며, 산업화로 인구가 늘고 도시 노동자들의 여가 활동이 증가하면서 야구는 빠르게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1858년엔 미국 최초의 야구 단체 **NABBP(전미아마추어야구선수협회)**가 설립되며, 야구는 단순한 동네 놀이에서 조직 스포츠로 발전한다.

 

니커보커 규칙 

1. 기본 구성 규칙(경기장·선수 수)

1) 1루–2루–3루 간 거리: 42보(약 90피트)

오늘날 MLB와 동일한 거리다. 19세기 이전 구기 종목들은 기준이 없었기에 정식 규격화를 처음 시도한 규칙이다.

2) 경기 인원은 9인

현대 야구의 9명 수비 체계는 여기서 비롯되었다. 당시 다른 지역에서는 7명~11명 등 제각각이었음.

3) 경기 승패는 ‘21득점 선취’

초기 야구는 21점 먼저 얻으면 승리하는 방식이었다. 9이닝 제도는 훗날(1857년) 별도 회의에서 도입된 규칙이다.

 

2. 아웃 규칙

1) 플라이 아웃(Fly Out)

타구가 직접 잡히면 아웃. 단, 당시에는 ‘세컨드 바운스 아웃(One-bounce catch)’도 허용되는 경우가 있었지만, 니커보커 규칙에서는 지속적으로 직접 잡는 플라이 아웃을 강조했다.

2) 태그 아웃(Tag Out), 포스 아웃

공을 가지고 러너를 태그하면 아웃, 또는 베이스를 먼저 밟으면 아웃이라는 개념이 정식화되었다. → 현대 야구와 거의 동일한 중요한 혁신.

3) 공으로 주자를 ‘맞혀서(out by soaking)’ 잡는 행위 금지

라운더스·타운볼에서는 야구공을 던져 맞히는 방식이 있었지만, 니커보커 규칙은 이를 금지했다. 현대 야구의 안전성·전술 체계에 직결되는 핵심 변화.

 

3. 타격 및 득점 규칙

1) 타자의 타격 순서는 교대로 진행

모든 선수는 정해진 타순에 따라 타격해야 했으며, 순서를 어기면 벌칙이 있었다. 이는 현대식 타순 개념의 시작이다.

2) 페어·파울의 개념을 도입

명확한 라인 규정은 아직 부족했지만, 공이 정해진 영역을 벗어나면 파울이라는 개념을 마련했다. 이후 MLB 규정으로 이어지는 핵심 정의.

3) 주자가 4개 베이스를 회전하면 1득점

당시에도 득점 방식은 동일했다. 다만 ‘공이 경기장 바깥으로 나가는 홈런 개념’은 비교적 약하게 정의되었다.

 

4. 투·포수 관련 규칙

1) 투수는 언더핸드로 공을 던져야 한다

당시 투수는 공격적 역할이 아니라 타격을 돕는 역할(피처) 성향이 강했다. 오버핸드·사이드암 투구는 후대에야 허용되기 시작했다.

2) 포수는 뒤에 위치하되, 보호 장비 없음

당연히 헬멧·미트 같은 장비가 없던 시기라 포수의 위치는 지금보다 더 멀었다.

 

5. 경기 운영 규칙

1) 심판(언파이어)의 권한 규정

심판은 공수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역할로 처음 규정되었다. 현대 같은 포지션 심판이 아니라 경기 전체를 관리하는 1명의 심판이 일반적이었다.

2) 페널티 규정 도입

타자가 고의로 공을 치지 않는 행동(시간 끌기), 선수 간 언쟁 등을 제한하는 문구가 있었다. 초기 스포츠 치고는 꽤 체계적인 규범.

 

6. 현대 야구와의 주요 차이

1) 9이닝 제도가 아님 : 당시 목표는 ‘21점 선취’, 정식 9이닝은 12년 뒤인 1857년에 도입.

2) 투수의 역할이 전혀 다름 : 지금처럼 삼진을 노리는 투수가 아닌, 타자가 잘 치도록 넣어주는 사람에 가까웠다.

3) 포수·장비·플레이 스타일 미성숙 : 안전장비가 없어서 포수는 뒤에 섰고, 수비·주루 전략은 지금보다 훨씬 단순했다.

 

■ 남북전쟁 이후: 프로화의 시작과 리그 탄생

전쟁을 계기로 야구가 전국적으로 퍼졌고, 첫 프로팀이 등장

남북전쟁(1861~1865)은 야구 전파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병사들 간의 레크리에이션으로 전국 각지에 규칙이 확산되며 전국 스포츠가 되었다. 이후 1869년, 오하이오의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가 미국 최초의 프로 야구팀으로 출범한다. 이 팀은 연봉을 지급해 선수를 고용했고 연승 기록을 세우며 야구 열풍을 일으켰다.

1876년에는 시카고의 명망가 **윌리엄 흄버트(윌리엄 훌버트)**가 중심이 되어 **내셔널리그(NL)**가 창설된다. NL은 선수 이동 통제권, 경기 일정의 안정성, 원정 경기 보장 등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운영 방식을 도입했다. 여기서 MLB의 원형이 만들어졌다.

 

남북전쟁

  - 연도 : 1861~1865

  - 개전이유 : 노예제 확대 문제와 남·북의 경제·사회 구조 차이

  - 경과 : 1861년 남부 11개 주가 미국 연방에서 탈퇴해 ‘남부연합(CSA)’을 구성하며 전쟁이 시작, 북부는 산업 기반과 인구 우세, 남부는 지형·지휘관 역량을 강점으로 삼아 장기전, 1863년 링컨의 노예해방선언은 전쟁 목적을 ‘연방 보존 + 노예제 폐지’로 확장

  - 결과 : 1865년 북부 승리 → 미국 다시 통합 → 노예제 공식 폐지(헌법 13조)

20세기 초: 데드볼 시대(Dead-ball Era)

작은 경기장, 무거운 공, 낮은 득점의 전략적 야구 시대

1900~1919년을 데드볼 시대라 부른다. 당시 공은 쉽게 더러워지고 무거워졌으며, 투수들은 스핏볼처럼 오늘날 금지된 투구도 사용했다. 파워히팅은 거의 없고 **번트·도루·희생플라이를 중심으로 한 ‘작은 야구’**가 주류였다.

이 시기 최고의 선수는 **타이 콥(Ty Cobb)**이다. 극단적 기교와 발군의 주루 능력으로 상징되는 데드볼 시대는 1920년대 새로운 규정(새 공 수시 사용), 경기장의 조명 개선, 장타력 중심 타자 등장으로 종말을 맞는다.

 

스핏볼 : 투수가 침, 땀, 바셀린, 로진 이외 물질 등을 공에 묻혀 회전·무게 균형을 비정상적으로 바꿔서 던지는 불법 투구

■ 1920~1945: 라이브볼 시대와 재키 로빈슨의 등장

장타 중심의 현대적 야구의 시작, 인종 장벽 해체로 야구의 사회적 위상 급상승

1920년, **베이브 루스(Babe Ruth)**가 장타력 혁신을 이끌며 ‘라이브볼 시대’가 열렸다. 더 밝은 조명, 강화된 공, 넓어진 타자 친화적 구장이 홈런 붐을 일으켰다. 이 시기 야구는 미국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부상한다.

1947년은 야구사에서 가장 중요한 해 중 하나이다. **재키 로빈슨(Jackie Robinson)**이 브루클린 다저스에 입단하여 인종 장벽을 깨뜨린 첫 아프리카계 메이저리거가 된다. 이는 야구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미국 사회 통합의 상징적 장임을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 1950~1970년대: 확장, 자유계약제, 현대 구단 시스템

텔레비전 시대·인구 이동·노동권 인식이 야구를 크게 개편

제 2차 세계대전 전후 미국 인구 이동과 TV 보급은 야구의 지역적 확장을 촉진했다. MLB는 동부 중심에서 벗어나 서부·남부로 팀을 확장했다(도저스·자이언츠가 LA·SF로 이전). 이 과정에서 시장 규모와 구단 재정의 격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1975년에는 커트 플러드 사건을 계기로 ‘리저브 조항’이 무효화되며 자유계약(FA) 제도가 도입되었다. 이는 선수의 권리를 확대하는 동시에, 구단 운영에 경제적 전략을 요구하는 시대를 열었다.

 

커트 플러드 사건

  - 1969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외야수 **커드 플러드(Curt Flood)**가 구단의 일방적인 트레이드에 반발하며 **MLB의 ‘리저브 조항(Reserve Clause)’**을 정면으로 문제삼은 사건

리저브 조항

  - 선수가 계약이 끝나도 계속해서 원 소속 구단에 ‘묶이는’ 제도

  - 선수는 구단이 허락하지 않는 이상 이적할 수 없어, 사실상 평생 한 팀의 소유물처럼 취급됨
  - 월급 협상 등 다방면에서 선수가 구단에게 불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듬

■ 1990년대 이후: 세이버메트릭스와 데이터 시대

전통적 스카우팅을 넘어 데이터 기반 전략이 야구를 재정의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빌 제임스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사례(머니볼)가 대표하는 세이버메트릭스 혁명이 도래한다. wRC+, WAR, FIP 같은 지표는 선수 가치를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게 해주며 구단 운영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최근 MLB는 트랙맨·스탯캐스트 같은 첨단 분석 시스템을 도입해 공의 회전수(RPM), 발사각(LA), 비거리(EV)까지 정교하게 분석한다. 오늘날 야구는 과학기술·데이터 산업이 결합된 또 하나의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로 자리 잡았다.